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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수난 성지주일 교황 프란치스코 강론
작성자
노틀담수녀회
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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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주님수난 성지주일 교황 프란치스코 강론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였습니다.” (필리 2:7). 사도 바오로의 이 말씀이 우리를 이 성주간으로 이끌도록 합시다. 반복되는 후렴구처럼, 하느님의 말씀이 예수님을 종으로 나타내는 때, 성 목요일에 예수님은 당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종의 모습으로 나타나며, 성 금요일에는 고통 받고 승리하는 종의 모습(cf. 이사 52:13)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내일 우리는 이사야 예언자가 그 분에 대해 예언한 것을 듣게 됩니다.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다”(이사 42:1)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섬김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는 종종 우리가 하느님을 섬긴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우리를 섬기겠다고 자유롭게 선택하신 분은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고 그 사랑을 되돌려 받지 않는 것은 어렵습니다. 만약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봉사를 받지 않겠다는 한다면 섬기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 됩니다.
하지만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어떻게 예수님은 우리를 섬기셨습니까? 당신 목숨을 우리를 위해 내어놓음으로써 그렇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에게 소중한 존재입니다. 우리를 위해 그 분은 많은 대가를 치루셨습니다. 폴리죠의 성 안젤라는 예수님이 그녀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너에 대한 나의 사랑은 농담이 아니야.” 우리에 대한 그분의 사랑은 그분이 당신 자신을 희생하도록 이끌었으며 우리 죄를 짊어지시도록 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하느님은 우리 죄의 모든 대가를 짊어짐으로써 우리를 섬기셨습니다.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겸손, 인내 그리고 종의 복종으로 그리고 순수하게 사랑으로써 말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예수님을 섬기셨습니다. 하느님은 예수님을 무너뜨리는 악을 없애지 않으셨으며 오히려 그 분의 고통 안에서 그 분에게 힘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진 악은 선으로써, 마지막 까지 사랑하는 바로 그 사랑으로 극복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당신 사랑하는 이들의 당신을 배반하고 부정하는 가장 고통스러운 상황을 체험하는 그 순간까지 우리를 섬기셨습니다.
배반.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팔아넘긴 제자 그리고 당신을 부정한 제자의 배반으로 인해 고통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호산나를 부르던 사람들에게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마태 27:22)라고 외치는 군중들로 인해 배반을 당하셨습니다. 그분은 그분을 부당하게 고발한 종교 집단들에 의해 그리고 그분과 관련하여 손을 씻은 정치 집단들에 의해 배반을 당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고통을 겪었던 크고 작은 배반들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굳은 신뢰가 배반을 당한 것을 발견하는 것은 끔찍한 일입니다. 우리 마음의 깊은 곳에서 실망이 솟구쳐 오르며 심지어 삶이 무의미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사랑을 받고 또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그리고 가장 고통스러운 일은 우리에게 충실하겠다고 약속하고 또 우리와 가까운 이들로부터 배반을 당하는 것입니다. 사랑이신 하느님이 얼마나 고통스러우셨을지 우리는 상상조차 못합니다.
안을 들여다 보도록 합시다. 만약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솔직하다면 우리는 우리의 불충실성을 볼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거짓과 위선 그리고 이중성이 있나요? 얼마나 많은 좋은 지향들이 배반을 당하나요! 얼마나 많은 약속들이 깨어지나요! 얼마나 많은 결심들이 지켜지지 않나요! 주님은 우리 자신 보다 우리의 마음을 더 잘 아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얼마나 약하며 결단력이 없는지, 얼마나 자주 넘어지는지, 다시 일어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어떤 상처는 치유하기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아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도움이 되시고 또 우리를 섬기기 위해 그분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이제 내가 반역만 꾀하는 그들의 마음을 고쳐 주고 기꺼이 그들을 사랑해 주리라.”(호세 14:5) 그분은 우리의 불충실성을 짊어지심으로써 그리고 우리에게서 우리의 배반을 빼내 가심으로써 우리를 치유하십니다. 실패의 두려움으로 낙담하는 대신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볼 수 있고, 그분의 포옹을 느낄 수 있으며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나에게 당신 팔을 펼치셨고, 당신의 사랑으로 저를 섬기셨습니다. 당신은 계속 저를 지지해 주십니다 … 그래서 나는 계속 나아갈 것입니다.”
저버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한 가지, 오직 한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마태 27:46) 이것은 아주 강력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의 저버림으로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위해 머물러계셨습니다. 이제 고독의 심연에서, 처음으로 그분을 총징으로 부릅니다. “하느님” 그리고 “큰 목소리로” 그분은 “왜”라고 질문하십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왜”입니다. “왜 저를 저버리셨습니까?” 이 말들은 사실 시편의 말씀입니다(cf. 22:2). 그들은 예수님이 또한 당신의 기도에서 극도의 고독을 경험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분 스스로 이 고독을 경험하였으며, 그분은 오늘 복음이 그분의 말씀을 인용함으로써 증언한 극도의 저버림을 경험하였다는 사실을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왜 이 모든 것들이 일어날까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이것은 우리를 위해 일어난 것이고, 우리를 섬기시기 위해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궁지에 몰려있을 때, 어떤 빛도 탈출구도 없이 우리가 죽음의 끝에 있을 때, 하느님께서 응답하지 않는 것으로 보일 때 우리는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모든 것에서 우리와 하나가 되기 위해 예수님은 그전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상황 안에서 온전한 저버림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분은 나를 위해, 당신을 위해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해 그렇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혼자가 아니다. 너와 더욱 가까이 하기 위해 너의 모든 고독을 나는 체험하였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섬기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배반과 저버림의 절정에 이르시며 우리의 가장 깊은 고통의 심연 안으로 내려오셨습니다. 오늘, 이 팬데믹의 비극 안에서, 이제는 와해된 많은 거짓된 안전들을 직면하며, 많은 희망들이 배반을 당한 것을 직면하며,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버림받은 마음에서 예수님은 우리 각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의 사랑에 너의 마음을 열어라. 너를 떠받혀주시는 하느님의 위로를 느낄 것이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배반과 버려짐의 순간까지 우리를 섬기신 하느님과 비하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우리가 창조된 사람을 위해 그분을 배반하는 것을 거부할 수 있고, 우리 삶 안에서 정말 중요한 것을 저버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을 사랑하고 우리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습니다. 모든 것은 지나가고 오직 이것만이 남습니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이 비극은 우리에게 심각한 일들을 심각하게 여기라고 그리고 이 문제에 너무 사로잡히지 말라고 요청합니다. 왜냐하면 삶은 사랑으로 측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주간에, 우리의 가정에서, 바로 우리에 대한 하느님 사랑의 온전한 측정치이신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분 앞에, 당신의 삶의 내어주는 그 순간까지 우리를 섬기신 하느님 앞에 섭시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을 바라봅시다. 그리고 우리의 시선을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 앞에 고정하시며 봉사하기 위해 살 수 있는 은총을 구합시다. 고통 받는 이들, 가난한 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결핍에 매달리지 않고 다른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선행에 관심을 가집시다.
내가 붙들어주는 나의 종이다. 예수님을 수난 중에서도 붙들어 주셨던 하느님께서는 또한 봉사를 위한 우리의 노력 안에서 우리를 지지해 주십니다. 가정 안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사랑하고, 기도하고, 용서하고, 다른 이들을 돌보는 것, 이 모든 것들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섬김의 길은 우리가 구원받은 바로 그 승리의 길이며, 생명을 주는 길입니다. 저는 특별히 35주년을 맞는 세계 젊은이들을 맞아 젊은이들에게 이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친구들, 오늘날 빛으로 온 진정한 영웅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유명하지도, 부유하지도 않으며 성공한 사람들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다른 이들을 섬기기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사람들입니다. 그 대열에 당신의 삶을 함께 하도록 부름 받았다고 느끼십시오. 당신의 삶을 하느님과 다른 이들을 위해 바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명은 오직 우리가 우리 자신을 내어줄 때만 받을 수 있는 선물이며, 우리의 깊은 기쁨은 사랑에 이유 없이 yes라고 응답할 때 우러나옵니다. 진정으로 사랑에 yes라고 응답합시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그렇게 하셨듯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