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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관료주의에 빠지지 않는 유일한 길>

작성자

최성옥

작성일
조회

4

<교회가 관료주의에 빠지지 않는 유일한 길>

 

전삼용 신부 묵상글(마르 6,14-29)

2026년 2월 6일

 

찬미 예수님!

우리는 흔히 악마라고 하면 뿔이 달리고 무시무시한 얼굴로 으르렁거리는 모습을 상상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우리가 만나는 가장 무서운 악은 의외로 아주 친절하고, 예의 바르며, 심지어 성실한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관료주의라는 이름의 악마입니다.

 

주민센터나 관공서에 갔을 때 가장 벽처럼 느껴지는 말이 무엇입니까? 담당 공무원이 세상에서 제일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하며 모니터만 쳐다볼 때입니다. “선생님 사정은 너무나 잘 알겠고 마음이 아프지만, 전산상 입력이 안 돼서 규정상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 말은 번역하면 이런 뜻입니다. “당신이 죽든 말든 내 알 바 아니고, 나는 내 책상과 월급, 이 시스템을 지켜야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이 전형적인 관료주의적 악인의 모습을 봅니다. 바로 헤로데 왕입니다. 헤로데는 세례자 요한이 의롭고 거룩한 사람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요한을 죽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생일 잔치에서 술김에 맹세한 체면이 문제였습니다. 딸 살로메가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자, 그는 몹시 괴로워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손님들의 시선왕으로서의 위신이라는 시스템을 지키기 위해, 죄 없는 예언자의 생명이라는 잃어버린 양을 포기했습니다. 그는 악한 살인광이라기보다는, 생명보다 자기 체면과 가오가 구겨지는 것을 더 두려워했던, 덩치만 큰 겁쟁이 관리자였습니다.

 

아서 밀러의 희곡 크루서블에 나오는 댄포스 판사도 똑같습니다. 마녀사냥의 광풍 속에서 그는 소녀들의 증언이 거짓임을 감지합니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습니다. 그가 내뱉은 말은 충격적입니다. “이미 12명을 같은 죄목으로 교수형에 처했는데, 지금 와서 이들을 사면하면 법정의 권위가 떨어진다.” 그는 자신의 판결이 틀렸음을 인정하여 법정의 권위를 구기느니, 차라리 무고한 존 프록터의 목을 매는 쪽을 택했습니다. 99마리의 양(권위)을 지키기 위해 억울한 한 마리 양을 절벽으로 미는 것, 그것이 관료주의의 끔찍한 민낯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는 어떨까요? 교회는 하느님의 집이니 다를까요? “교회법상 안 됩니다”, “전례 규정상 곤란합니다라는 말이 사람의 생명보다 앞설 때, 교회는 구원의 방주가 아니라 종교 서비스를 제공하는 차가운 동사무소가 됩니다. 교회가 관료주의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님의 마음, ‘착한 목자의 심장을 갖는 것입니다. 착한 목자는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들판에 두고서라도,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섭니다. 관료주의자는 계산기를 두드리며 “1%의 손실은 감수하자라고 말하지만, 목자는 저 아이 없이는 나도 집에 가지 않겠다라고 말합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을 보십시오. 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치려 하실 때, 바리사이들(종교 관료)은 눈에 불을 켜고 감시했습니다. “규정을 어기나 안 어기나 보자.”

 

하지만 예수님은 사람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으셨습니다. 시스템(안식일)이 무너지는 것보다, 눈앞에 있는 한 생명이 고통받는 것이 더 아프셨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

 

예수님은 규정을 지키느라 사람을 죽이는 비겁함을 찢어버리시고, 욕을 먹더라도 사람을 살리는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아무리 윗자리에 있어도 양 한 마리 지키기 위한 용기 있는 행위를 할 수 있을 때 관료주의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이끄시면서도 개인적으로도 한 영혼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발로 직접 뛰신 이유입니다.

 

1576년 밀라노에 흑사병이 돌았을 때의 일입니다. 귀족들과 행정 관리들은 모두 도시를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당시 밀라노의 대주교였던 성 가롤로 보로메오 추기경에게도 측근들이 피신을 권했습니다.

각하, 여기 계시면 전염됩니다. 교회의 시스템이 마비되면 안 되니 안전한 곳에서 지시를 내리십시오.” 이것이 관료주의의 상식입니다.

 

하지만 그는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그는 주교관의 화려한 가구와 집기를 모두 팔아치워 환자들을 위한 약과 식량을 샀습니다. 그리고 주교의 붉은 의복 대신 수단을 걷어붙이고 페스트균이 득실거리는 거리로 나갔습니다. 그는 맨발로 십자가를 들고 다니며, 길바닥에서 썩어가는 환자들에게 성체를 영해주고 임종을 지켰습니다. 그는 고위 성직자라는 높은 자리(시스템)에 안주하지 않고, 죽어가는 양 한 마리가 있는 그 비참한 현장으로 내려왔습니다. 조직을 지키려 했다면 도망쳤겠지만, 생명을 지키려 했기에 죽음의 땅에 남았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그리고 형제 사제 여러분!

우리는 종종 99마리의 양이 있는 안전한 우리, 안정된 시스템안에 안주하려 합니다. 그곳은 따뜻하고 규정이 우리를 보호해 줍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시스템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는 시스템 밖, 벼랑 끝에 있기 때문입니다.

 

시스템을 관리하는 관리자가 되지 말고, 울타리를 넘어 광야로 나가는 목자가 됩시다. 이것에 제가 사제 생활 20년 만에 처음으로 냉담자 방문을 하며 처음으로 느낀 것입니다. ‘어쩌면 그 이전까지 제 사제의 삶이 헤로데와 비슷하지 않았나?’ 한 영혼을 살리기 위해 나의 안위와 시스템을 버리고 떠날 줄 아는 용기 있는 신앙인이 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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