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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수 세는 지혜(시편 90,12)
작성자
최성옥
작성일
조회
908
<내 삶의 유통 기한을 안다는 것>
“날수 셀 줄 알기를 가르쳐 주시어,
우리들 마음이 슬기를 얻게 하소서.” 시편 90편 12절(최민순 옮김)
“종이 있으면 하나 줘 봐요.” 특강 후 다섯 시부터 소주와 고기로 1차를 마치고 하양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맥주와 마른안주로 2차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술 마시다가 웬 종이?’라고 생각하며 가방에서 종이를 꺼내어 나를 초대해 준 대구가톨릭 대학교 최원오 교수에게 건넸다. 과격한 말투만 보면 그가 로마에서 가톨릭 교부학으로 박사까지 받았다는 것을 짐작하지 못하겠지만, 나는 그가 앞뒤 재지 않고 던지는 말 속에서 삶에 대한 통찰을 얻곤 한다. 그만의 독특한 필체로 성경 시편에 나오는 한 줄을 내게 적어주었다. 안경을 이마 중간에 걸치고 읽은 뒤 “날 수가 무슨 뜻이에요?”라고 물었다. 성서를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들어보지 못한 말이었다. 그의 설명을 듣고서야 날짜를 세는 지혜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면서 지혜의 ‘끝판 왕’은 바로 날 수를 셀 줄 아는 것이라고 말하고는 다시 맥주를 들이켰다.
그 후로 위의 장면이 끝도 없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날 수 세는 지혜를 갖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냉장고 문짝의 우유 통을 집을 때마다 난 유통 기한을 확인하며 “모레까지는 먹을 수 있겠군”이라고 생각한다. 날수를 세는 지혜란 결국 내 삶에도 유통기한이 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갑’이 존재한다. 영원히 갑일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과, 끝을 생각하며 오늘을 사는 사람. 보통 전자의 부류가 갑 질을 한다. 날수 세는 지혜를 갖기 위해서는 세상 사람들과 다른 시계를 갖고 살아가야 한다. 이 시계는 끝나는 시점까지 얼마가 남았는지를 알려주고, 내게 주어진 것들을 얼마나 더 할 수 있을지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건강하게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날, 글을 쓸 수 있는 날, 아내와 함께 여행할 수 있는 날, 돈을 벌 수 있는 날,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는 날, 남들에게 지시를 할 수 있는 날…. 이처럼 끝나는 시점에서 지금을 바라보게 되면 우리는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다. 날 수 세는 지혜는 나를 겸손하게 만들기 때문에 위대하다.
날 수 세는 지혜의 또 다른 의미는 ‘지금, 여기’의 중요성이다. 우리는 너무 쉽게 ‘나중에 해도 된다’고 믿는다. 가족과의 시간은 은퇴하고 나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가족과 밥을 먹기보다는 상사와 동료와 회식을 나간다. 행복은 사치스러운 것이라면서 일단 돈을 많이 벌고, 보다 큰 아파트를 사면 그 뒤에 행복을 느껴도 된다면서 오늘의 소소한 행복에는 눈을 감는다. 내 삶을 돌아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볼까 하다가 머리가 복잡해지면 바쁜 회의와 일정 속으로 숨어버린다. 날 수 세는 지혜는 지금 하지 못하면 그 시간은 이후에도 오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지금 그와 깊은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낼 수 없다면 어쩌면 평생 그와는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할지 모른다. 대부분 그렇게 이 세상을 떠난다.
다음에 최 교수를 만나면 그와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를 세어볼 것이다. 첨언하자면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내게 친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헝겊으로 치면 까칠한 삼베 같은 사람이다. 내가 애매한 태도를 보일 때, 서슴없이 내게 욕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까칠한 그가 술에 취한 채 9시 넘어 하양역 플랫폼에서 포옹을 하고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었다. 나는 기차에서 날수 세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며 그만 잠이 들었다.
-김호 더 랩 에이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