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sters of Notre D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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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잘 버는 것은 기술, 잘 쓰는 것은 예술
작성자
최성옥
작성일
조회
627
“돈을 잘 버는 것은 기술이요, 돈을 잘 쓰는 것은 예술이다”
청년기의 어스름이 내리던 시절 수도 성소를 마음에 두고 만학도로 학력고사까지 치렀다. 합격과 더불어 나의 수중에 ‘돈’은 완전가뭄 상태였다. 하긴 그동안의 학원비도 손 위 언니가 형부 몰래 ‘삥땅’ 으로 보태 주었으니 뭐 당연한 수순과 귀결이었다. 합격장이 무용지물이 될 암담한 처지에서, 자영업으로 꽤 부유하신 둘째 아버님을 찾아뵈었지만 어느 대학에 붙었는가를 물어 보시곤 그뿐이었다. 아마 불행하게 ‘ㅅo 대학’에 붙었음 입학금을 좀 주셨을라나...? 그런데 나는 성소를 위해 ‘ㄱㅌㄹ 대학’을 지원했다.
내 친구 하 도미니카,가난한 ‘조 모시’씨랑 결혼하여 두 아들을 낳고, 어느 달동네 만오천원 단칸 월세 방에서 경제적으로 근근하게 생활력으론 열심히 살고 있던 때였다. 오래된 기억이라 분명하지 않지만, 그녀의 결혼과 당시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로선, 그녀를 만나서 뭐 어떻게 될 것 같다는 희망도, 정작 만나서도 뭐 어떻게 해주십사 부탁을 한 것도 아니었던 것 같다. 다만 나의 시름과 고단한 마음을 털어 나누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녀가 ‘잠깐 볼 일 좀 보고 오겠다“며 나를 두고 외출했다 돌아온 그녀의 손 안엔 뭔가 두툼한 것이 들려 있었다.돈 이었다. ”이 거... 내가 너무 가난해서 두 애들 교육도 못 시킬까봐 교육 보험 들고 있던 거 해약 온 거에요. 등록금하고 약간의 용돈이 될 수 있을 거예요. 갚을 수 있음 갚고, 갚을 수 없음 안 갚아도 되요.“ 그 돈은 당시 나에게도, 만 오천 원 달세 방을 사는 그녀에게도 큰 액수였다. ‘..............!!!!!!!............’ 그 돈이 나를 대학생이 되게 하고, 수도자로 살게 하고, 공부의 중요성을 알고 좋아하고 즐겨하는 영원한 학생의 마음으로 살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니까 그녀가 마련해 준 그 돈은 내 인생에 참으로 커다란 전환을 마련해 준 것이다. 아직도 앞으로도 그 큰 후원과 우정을 기억할 때 마다 퇴색함 없는 뭉클한 감사와 감동에 젖게 한다. 그 때도 지금도 내 친구 하도미니카는 돈에 관한 한 여전히 기술은 물론이요, 예술가적 소양을 발휘하고 있다. 그녀의 카리스마는 나로 하여금 한줄기 성찰도 하게 한다. ‘나라면 그 때 그 상황에서 내 친구 하 도미니카처럼 할 수 있었을까?’
그녀 편에서도 그 투자는 참으로 보람되고 잘한 투자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대학에 가서 나는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고 내가 딱 그 짝이었다. 학기는 왜 그리 짧고 방학은 왜 그리 길 던지... 열심과 성적표는 일치하진 못했어도 공부야말로 나에게 가장 쉽고 재미있는 취미요 특기라고 하면서 책,강의실,도서관과 친하게 지냈다. 지금은 천주교의 가장 중요한 교과서인 성경의 매력에 푹 빠져 열공중이다. 그리고 그 공부들의 결과는 나의 하느님과 우리 교회와 수도회가 가르치는 바를 명확하게 가르쳐주고 있다. 바로 하느님 나라의 회복에 참여하는 나눔과 연대의 실천이다. 나도 에덴동산의 회복을 위해 실천과 나눔 없는 공부는 ‘식물 공부’ 임을 잘 알고 하나라도 실천하는 영원한 학생이고자 노력한다. 이 나눔과 연대는 인간만의 본질과 특징은 아니다. 모든 피조물이 엄밀히 피차 공존과 공생을 위해 나누고 연대하며 살아간다. 이것이 현실이고 여기에 어떤 존재도 예외 됨이 없다. 그러나 자유의지로 자신의 몫을 절제하고 희생하면서 나누는 것은 인간만의 본질이며 존귀한 특성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경전인 성경은 인간의 이 존귀한 본질과 특성이 실은 인간의 자유의지 ‘선택’이 아닌 ‘필수’로써 ‘권리’이며 동시에 ‘의무’라고 장엄하게 선포하며 제시한다. 창세기는 1,1~2,25절까지 이 세상의 모든 것(공간,피조물,시간,관계,직책,동산,부동산)은 하느님이 만드셨다고 하며, 모세 오경 중에 가장 나중에 형성된 레위는 더 노골적으로 ‘땅은 나의 것이며, 너희는 내 곁에 머무르는 이방인이고 거류민(공동번역: 나그네.식객)일 뿐이라고 못 박는다.(레위25:23)이런 정의 아래 지침으로 안식일· 안식년· 희년·십일조를 제시하여 본 주인인 하느님께 빌려 쓴 값을 부자나 빈자나 나름대로 정성과 정확으로 셈하고 환원하여, 도움이 필요한 곳에서 최소최대한 적절히 쓰여 지도록 하고 있다. 히브리 사상의 나눔과 연대의 기막힌 가르침이요 장치요 법인 것이다. 이것이 구약의 문자적 가르침이라면 신약에서는 하느님이신 주님이 아예 당신의 존재로 하늘에서 땅으로, 신에서 인간으로 나누고 연대하신 인류사 최고의 나눔과 연대(사랑)에 대해 이야기 한다.
돈에도 깊은 뜻과 철학과 소임(사명)이 있다. 돈은 통화(通貨)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서양말 어원은 돈을 만드는 주조소에서 동전이 쏟아져 나오는 의태어 ‘커런시currency’에서 유래하였다고고 한다. 커런시Currency는 '흐르다', '달리다' 라는 뜻의 라틴어 쿠레레Currere에서 나왔다.(참조: 리브레 위키) 그런가하면 우리 나라에서는 돈은 ‘돈다’는 동사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민간 어원으로는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돌아다닌다는 뜻을 지닌다. [참조: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나는 이 말이 참 정확하다고 여겨진다. 돈의 사명과 소임은 돌고 도는 것이다. 사실 돈이란 생활을 교환하는 수단이며, 그리고 우리가 서로에게 봉사한 결과로 주어지는 생명 에너지의 상징이다. 돈)통화는 에너지가 흐르는 성질과 경향을 나타낸다. 그런데 돈에 관한한 두 경향성이 대비된다. 하느님 아버지는 있는 쪽을 덜어 없는 쪽을 채우려 하시고, 사람의 아들과 딸들은 있는 쪽까지 빼앗아다가 더 있게 축적하려는 탐욕의 경향이 있다. 돈은 돌아야 제 몫을 하는 것인데, 일부의 사람들이 이 돈의 유통과 순환을 막으려고 한다면, 돈이 지닌 생명 에너지는 순환하여 돌아오는 길이 막히게 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지구와 인류의 손과 발을 묶어 버린 지금은 더욱 하느님의 가르침으로 돈이 제 소임을 다하도록 더욱 실천해야 할 시간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전 세계가 위축,불편,감염,사망,실직,파산,부도등의 시련을 겪는 엄혹한 시절이 우리를 시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험에서 모두가 서로 살아 남을 수 있는 공존의 길은, 서로 연대하고 나누는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돈이든 자원이든 인정이든 넘치도록 흘려 다 같이 어깨동무하며 살아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