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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가 평수녀라서...

작성자

최성옥

작성일
조회

564

저가 평수녀라서...


 

매주 화요일 오후 다섯 시는 성당 사무실에서 구제금 2,000원이 지급되는 날입니다. 다섯 시간이나 전인 낮 12시경, 제일 먼저 깔끔하고 단정한 차림새의 할아버지 두 분이 전용차 자건거를 나무 그늘에 세워 두시더니 성당 현관 입구 벤치에 앉아 한없이 기다립니다. 문득 나의 궁금증? ‘구제금은 불로 소득일까? 나름 노동의 대가인가?’ 두 할아버지의 경우를 보더라도 집 나서는 시간, 자건거 이동 시간, 성당에서 너댓 시간을 기다리는 시간 등 계산해보니 나름 노동의 댓가라고도 해석됩니다.

오늘은 백주간을 하는 벗들과 방학 후 처음 만난 날이라, 공부 후 멤버들과 칼국수 점심을 같이 하였습니다. 식사 마치고 들어오는데 가녀리게 생긴 50대 초반의 자매님이 면담을 하자시네요. 포올 폴~~미처 다 가시지 않는 구름과자 담배 냄새까지 풍기면서... ‘뭐 여자도 담배 할 수 있지’ 라고 여성성을 발휘하며 성당 휴게실에 앉았습니다. 모처럼 경청의 자세를 취하고.

아래부터는 그 자매님이 사이사이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한숨과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한 이야기들입니다. 어찌나 리얼하던지 나중에 생각해보니 마치 연기가 일품인 연극배우 같았다고 생각됩니다.

자매님은 서울에 살았고, 개신교 신자로 집사까지 했었는데, 보증 서 달라는 같은 교회 신자의 보증을 섰다가 사람 잃고 가산도 완전 탕진하였답니다. 생전에 부모님이 도둑질과 보증서지 말라는 교육을 철저히 하셨는데 어리석은 짓을 했다고 후회를 하시네요. 보증금을 갚기 위해 어린 자녀 두 명과 부부는 엄청난 고생을 하였고, 오랜 세월 동안 부부와 자녀들과 피차 제대로 된 가정생활도 하지 못하면서, 고통과 고생 끝에 4억 이상에 달하는 보증금을 다 갚았답니다. 그래도 먹고 살 길은 여전히 막막했는데, 울산에 있는 경찰관인 친정 오빠가 다녀가라 해서 갔더니, 생전의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유언처럼 여동생인 자신이 가장 어려울 때 주라고 했다면서 통장을 주더랍니다. 통장에 9억 가까이 있었고 그 돈으로 반포에 집을 샀답니다. 그런데 청년이 된 두 남매가 부모님께 준다고, 늦은 밤에 선물을 사러 압구정에 갔다가 압구정 숲속 길에서 덤프 트럭에 치여 스물한 살 딸은 오일 만에, 열아홉살 아들은 칠 일 만에 죽었답니다. 괴로운 마음에 본인은 한강다리에서 집에서 투신과 음독으로 몇 차례 자살을 시도하였지만, 그때마다 기구하게 살아남아서 아마도 ‘명대로 살다 오라는 하나님의 은총’ 인가 생각하고 자살도 포기했답니다. 그리고 서울에서 그동안 너무 힘들었기에 고향인 천안 쌍용동으로 이사했답니다. 병든 시부모들을 잘 수발했기에 신랑도 기꺼이 보금자리 이동에 협조하였구요. 성당 옆에 대우 아파트(쌍용동 성당 근처 아파트로 동네에서는 비교적 고급 아파트) 102동에 집을 샀답니다. 이제 천주교로 개종하여 교리도 배우고 싶고 귀의하고 싶답니다. 그런데 또 마귀가 씌웠는지 그제는 신부동(쌍용동 근처의 마을 이름)에 가서 자살하려고 줄 두 개를 맸답니다. 그런데 하얗고 파란 옷을 입은 성모님 같은 분이 말리는 듯한 환상을 보았답니다. 그래서 이제 정말 자살을 포기하고 용기 내어 사람들에게 물어 쌍용 성당을 찾아 왔답니다. 여기까지 들으니 어디에나 계시지만 거룩하고 장엄한 침묵 속에서 초대하시는 하느님 아버지 앞으로 모시고 가야 할 것 같았습니다. 대성당으로 말이죠. 맨 앞에 장궤틀에 같이 꿇어 앉아 성호경-주모경.영광경-자유기도 순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마침 성당에서 한 달 후에 교리도 시작될 계획이었고, 아직 신자는 아니지만, 저녁 미사정도에 참석하면서 아픈 마음 주님께 봉헌하고 힘내서 살자고 격려하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더욱 그 자매님이 눈이 더욱 커지고 빛나더니 “수녀님 중요한 부탁이 있는데 꼭 들어 주셔야해요..꼭요!

간곡한 눈빛으로 반복하는 말을 들으며 속으로 은근히 겁이 났습니다. 뭐지..? 이건 어디서 봤던 것 같은 분위기인데...그래! 돈 달라고 하기 전 바로 그 분위기 조성하는 그런 모드인데....그런가? ...아닌가?’

자매님의 꼭 들어달라는 이야기의 계속입니다. “우리 애들이 참 열심히 믿음생활을 하였습니다. 평소 가난하고 불쌍한 어른들을 돕고 해외선교가 꿈이었다며..., 아이들이 가고 없으니 친정오빠가 주기로 한 9억 원에서, 거룩한 선교사처럼 수녀생활을 하고 있는 저에게 돈을 좀 주겠다” 라는 것입니다. ‘헉... 돈을 내게?... 돈이란 곶감 같은 것, 빼먹는 맛은 곶감 맛이지만, 술술 빠진 다음 특별한 재주 없으면 채우기 힘든 속성을 가진 것이 돈인데, 보아하니 돈으로는 뼈대 있는 사람도 아닌 것 같고, 불원 노후 생활도 잘 챙겨야 할 형편으로 짐작되어 이건 아니다 싶어 ‘천천히요... 잘 생각해 보시면서요...“ 라고 말했습니다. 바로 그 말이 끝나자마자, 그 다음 말씀...(하도 리얼하고 액션과 눈물이 간절해서 여기까지 이야기는 모두 진짜라고 판단함) “그런데 수녀님 내가 엊그제 신부동에 가서 자살할려고 했다고 했잖아요. 그때요 내 지갑과 모든 것(통장도?)을 버렸어요. 그런데 급히 서울 좀 다녀오려고 하는데...오만원만 빌려 주실래요? 내일 아침까지 꼭 입금해 드릴께요”

‘......??? 오..., 오만원?...그렇구나, 이거였구나!...세상에 그런 줄도 모르고...옴마나...난 아직도 어린가 봐~그런가 봐~’ 그리고 넘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던 그 순간 불쑥 튀어 나온 저의 말, “근데요 자매님, 저가 평 수녀라서 지니고 있는 돈이 한 푼도 없는데... 어쩌죠...?”

그 때 진짜로 내 수중엔 돈이 한 푼도 없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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