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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의 고민
최성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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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의 고민
우리 동창들은 1년에 한 번씩 모입니다.
신학교 입학 동기 모임입니다.
이 모임에는 신부가 된 사람만이 아니라
신부가 되지 아니한 사람도 모입니다.
해마다 이렇게 모인 어느 날 나는 신부가 되지 아니한
친구들에게 말했습니다.
“너희들 신부 안 되길 정말 잘 했다.
신부가 되었으면 너희도 지금 우리처럼 자기만 아는
고집불통에 남의 말 듣지 않고 모든 이들 위에 군림하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되었을 텐데
신부가 되지 아니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신부 안 된 것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해라.”
그들의 지금 모습에는 신학교 처음 입학할 때의
그 순수하고 고운 마음이 남아 있었습니다.
목에 힘주고 이야기하는 안하무인의 거만한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나도 만일 신부가 되지 아니 됐다면 지금 이 친구들처럼
어느 정도 이런 순수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었을 텐데.”
이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내’가 고집불통이 아니라
‘신부’가 나를 고집불통으로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부라는 직책이 신부된 사람을 고집쟁이로 만든 것입니다.
만일 신부가 되지 아니했다면
세상의 신부들은 분명 신자들 위에 왕처럼,
보스처럼 군림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나는 신부된 것이 억울했습니다.
신부가 나를 큰소리치고 반말하며 버릇없는 존재로 만들었구나.
나는 정말 왕처럼 보스처럼 살고 싶지 않습니다.
아무한테나 큰소리치며 뻔뻔하게 살기 싫습니다.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에게 반말을 하며 살고 싶지 않습니다.
‘권위주의적’으로 봉사하고 군림하며 사랑을 펼치고 싶지 않습니다.
밥 먹고 신자들이 돈 내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신부가 나를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그러자 사고의 또 다른 켠에서는 나는 신부니까
더욱 고집 센 사람이 되어야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신부는 본래 고집이 세어야 하니까.
고집이 없으면 아직 덜 된 신부니까 말입니다.
신자들도 신부가 반말한다고 버릇없다고 거만하다고
신부된 사람을 욕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부가 되지 않았으면 그는 분명 반말하고 큰소리치는
사람이 되지 아니했을 테니까요.
그래서 나의 고민은 커집니다.
신부는 왜 왕처럼 군림해야 하는지
무엇이 신부를 그렇게 만드는지
신도들은 왜 이 고집불통을 신부라고 하면서도
왕처럼 모시는지 그 이유를 정말 모르겠습니다.
반말하는 신부의 모습은 어쩌면 교회의 모습입니다.
교회는 세상을 늘 성직자 중심주의와
반말하는 권위주의적인 자세로 대하여 왔으니까요.
신부의 고집은 신부된 사람과 되지 아니한 사람이 교회를 위하여,
예수님을 부끄럽게 만들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함께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교회가 하느님의 백성임을 아는 날
제도적 교회가 성령의 교회임을 아는 날
이 못된 버릇은 고쳐질 것입니다.
그 때 순수하고 고운 마음으로 신부가 되고자 했던 젊은이들의
마음이 더 순수하고 더 고결한 마음으로 변할 것입니다.
자기의 무력함과 약함을 고백하며
더 겸손한 봉사자로 태어날 것입니다.
- 이제민 신부님 -
삼씨(말씨,솜씨, 맵씨)의 부활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