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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님이 사 주신 집

작성자

최성옥

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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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3

수녀님이 사 주신 집


   수련 2년 첫 서원을 앞두고  짧은 본가 휴가를 갔다. 우리 동네는 교회와 성당과는 비교적 인연이 먼 동네였다. 마을에서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나 특히 성당에 다니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전혀 듣지 못하고 성장했다. 아마도 동네 사랑방 같은 우리 집에 모이시는 분들이 예수님과는 인연을 달리하고 있어서 그랬나보다. 수도복을 입고 동네 입구에 들어서니 고향이 타향 같고 나는 이방인 같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무신론자였던 우리 집 그 집 딸인 내가 수녀가 되어 수도복을 입고 고향에 오다니......,

마을 입구에서 옥희 어머니를 만났다.(이하 ‘어머니’) 수도복을 입은 나를 보신 어머니는 내 손을 잡고 수도복을 매만지시면서 “아이고 세상에 수녀님이 되셨네…….아이고, 이 얼마나 영광인가?” 하시며 송구하게 존대를 하시고 나의 부모님보다 더 기뻐하시고 좋아하셨다.(나는 내 어머니가 나 때문에 우시는 것을 한 번도 본적이 없는데, 입회식을 마치고 귀가하신 후 삼 일을 우셨다고 들었었다) “예언자는 고향에서 존경 받지 못한다.”고 하는데 내가 예언자가 아니라서인지 아니면 옥희 어머니의 신심과 인품과 훌륭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어머니는 단번에 나를 성교회 수녀로서의 한껏 예우하여 대해 주시고 기뻐해 주셨다. 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옥희 어머니는 사실 신앙심이 보통이 아니신 분이셨다. 그 곤궁한 생활 중에서도 천주 신앙을 힘 있게 증거하는 신실한 믿음을 지닌 분이셨다.

옥희는 내 친구다. 어린 시절 그네는 아버지 없이 엄마,오빠, 남동생, 여동생 합해서 다섯 명이 우리 동네로 이사와 어떤 집 빈 방을 얻어 살았다. 한 동네 살았지만 초등학교가 달라 그렇게 열렬하게 친하지는 못했다. 그렇게 서로 성장하고 고향을 떠나 살다, 나는 수녀원엘 가고 옥희는 결혼을 했다. 옥희네는 오래도록 집이 없었다.

“아직 그 집에 사세요?”내가 물었다.

“수녀님 우리 집 샀어요?” 옥희 어머니께서 힘차게 말씀하셨다.

“아니 정말요, 어디에요, 어떻게요?”

“바로 요 뒤에……. 00네 집 있지? 그 집을 본당 수녀님이 사주셨어.”

태어나서부터 살아온 고향이기에 가가호호 집집을 다 알고 있는 내게 ‘요 뒤에 그 집’은 동네에서도 제법 번듯한 기와집에다 마당도 꽤 넓은 괜찮은 집이었다. 그런 집을 본당 수녀님이 사주셨다는 것이다.

…….

가난한 옥희네 집에 본당 수녀님이 가정 방문을 오셨다. 수녀님이 척 보시기에 단칸방에 그 곤궁한 삶의 여정이 역력히 배인 모습을 분명히 목격하셨을 것이었다. 수녀님 마음이 예수의 마음처럼 짠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방문을 마치고 돌아가시려는 수녀님 손에 옥희 어머니는 한사코 차비를 들려 주셨다. 우리 동네와 성당은 시내버스를 한 번 타면 그저 십 분 안에 도착하는 지근거리이다. 택시를 타도 기본요금 밖에 나오지 않는 거리다. 그런데 어머니가 차비라고 주신 돈은 시내 버스비나 택시비가 아닌, 당신의 하루 일당 품삯에 해당하는 큰 돈(?)을 쥐어 주셨다. 당연히 수녀님은 안 받겠다 하고, 옥희 어머니는 받으시라고 씨름을 하시다가 종당엔 어머니의 승리로 끝났다. 나중에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하였지만 옥희 어머니 고집은 황소에 쇠줄 고집이시다. 수녀님은 본당으로 돌아가셔서 옥희네 가정을 위해 여러 번에 걸쳐 생미사를 봉헌해 주셨다. 사실 천주교 신자들은 여러 가지 지향과 목적으로 생미사 연미사 감사 미사 등을 많이 봉헌한다. 옥희 어머니는 이제껏 살아오시면서 생미사 한 번 봉헌했으면 했지만 언감생심 단 한 번도 그렇게 하실 수가 없었다. 당신 몸으로 품을 팔아 하루 벌어 살기도 버거운 처지에, 생미사 봉헌이란 사치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런데 본당 수녀님이 당신 가정과 가족을 위해 한 번도 아닌 여러 번에 걸쳐 생미사를 봉헌해 주신 것이다. 그런 일이 있은 뒤 집안에 자녀들에게 좋은 일이 연속되면서 이 집을 장만하기까지 되었다. 그러니 어머니 계산에 ‘요 뒤 그 집’은 수녀님이 사주신 집이라는 것이다. 

 

'수녀님이 사 주신 집' 이 미담은 수도자의 청빈과 가난을 어떻게 이해하고 살아야 하는지 생생하게 공부하는 계기였다. 

-수도자는 순명∙정결∙청빈 삼 대 서원의 삶을 산다. 수도자의 청빈) 가난도 두 종류가 있는 것 같다. 물질과 재화를 절제하고 피하는 것이 소극적 가난이라면, 적극적 가난은 자신이 소유한 것을 나누고 다른 사람과 세상으로 하여금 재화의 공공성을 상기시키고 교화시켜 연대하도록 하는 것이다. 전자가 규범화된 가난이라면 후자는 복음화된 가난이다. 세상 사람들은 규범화된 가난도 이쁘게 보시겠지만, 하느님은 무모할 만큼의 너그러운 정의와 사랑, 무한한 경청을 담은 가난을 더 필요로 하신다. 그리고 사실 표징을 찾는 세상에서도 규범화된 가난은 충분한 가난이 아니다. 수도자가 가난을 개인적이고 규범적인 수준들, 가방 몇 개 옷 몇 벌 신발 몇 켤레 등으로 축소하는 것은 진짜 가난이 아닐 수 있다. 자신의 성화만을 추구하는 제한된 가난보다 세상을 위해 규범을 초월하는 가난의 덕이야말로 더 본질적이고 실제적인 가난이다. 수도자는 성서와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이러한 가난의 본질을 이해하고 살아가야 한다. 천상 영광 속에 부유하셨던 성부 하느님은 모든 사람들과 그 부요함을 나누기 위해 스스로 가난한 성자 예수가 되셨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 특히 수도자들로 하여금 예수의 가난에 함께하도록 부르시는 것이다. -

 

- <이 부분, ‘재속의 불씨’(조안 키티스터),“정의로 부르심” 편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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